대종회장 인사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종원 여러분!



전국각지에서 참석하신 일가 여러분 함께 기쁜 마음으로 만나 뵙게되어 대단히 반갑고 감사합니다.

오늘 뜻 깊은 정기총회에서 저보다 더 대종회를 아끼고 깊은 사명감을 갖고 계신 유능한 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저를 제21대 풍산홍씨 대종회장으로 선출해 주신데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동안 대종회를 이끌어 주시고 지켜주신 전임회장님을 비롯한 원로, 고문, 임원님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한편, 종친일가님들의 깊은 관심과 배려로 종사발전 및 종원들간 화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포용하여 단합에 열과 성을 다해 회장으로서 막중한 책무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차기 집행부가 지향하고자 하는 종사방향은 화합과 단결입니다.
만일 편가르기, 분열, 불화요인이 있다면 종원 여러분과 합심해서 이를 배척하고 오로지 화합을 위해서 매진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능하고 참신한 젊은 인재 종원들의 적극적인 종사참여 및 이사회 구성원이 보다 젊어질 수 있도록 세대교체를 통해서 대종회가 활력이 넘치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종사의 혁신을 이루고자 합니다.

시조님의 철학이신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정신 및 풍산홍씨 대종회 설립 이래 40여년간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정통성을 계승 발전시키고 선조님과 선대회장님들의 유훈을 받들어 종사가 바로 서고 오로지 정도로 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종원 여러분!
대종회장의 최대 덕목과 가치는 종원들간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대종회를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종원 여러분의 고견과 진심어린 지도편달을 아낌없이 부탁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풍산홍씨 대종회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하면서 여러분의 가정에 행운이 가득 하시고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04월 21일

풍산홍씨대종회 회장 홍광식 謹拜


풍산홍씨 시조


홍지경(洪之慶 國學 直學 )


公의 姓은 洪이요 諱는 之慶인데 字와 號와 生.卒은 전하지 않는다.

始祖 國學 直學公 께서는 高麗 高宗 29년(서기 1242)에 文科(지금의 행정고등고시)에 壯元及第(수석 합격)하시어 벼슬이 國學 直學(조선시대의 成均館, 지금의 서울대학교 교수)을 역임하셨다.
墓所는 安東郡 豊川面 申城洞 午山 堂龍의 乾坐이다.

配 順天 金氏
始祖妣 順天金氏의 墓所는 直學公 墓所가 있는 山麓 아래의 亥坐이다. 1746년(조선 영조22)에 直學公의 墓所와 함께 墓碑를 세웠으나 舊碑가 파손되어 1981년에 改竪하였다.

始祖의 諱는 之慶이라 하셨으니 高麗 高宗 二十九年 壬寅에 道試에서 拔濯 추천되어 文科 會試에 장원으로 合格하셨으며 그것은 宋나라 浮祐 二年의 일이었다. 벼슬은 國學 直學에 이르셨고 夫人은 順天 金氏로서 二男을 두셨는데 長男은 都僉讚 舍人 벼슬을 하신 侃이시니 文章으로 그 名聲을 世上에 떨치셨고 號를 洪崖라고 하셨으며. 次男은 樞密使 벼슬을 하신 備이시다. 舍人公께서는 密直使 三館 大提學의 벼슬을 하신 侑를 낳으셨고 密直使公은 寶文閣 大提學 벼슬을 지내신 演을 낳으셨는데 代代로 安東의 豐山縣 豐南面 申城浦라는 마을에 사셨으며 이 고장에 장례를 지내신 것이었다. 寶文關 大提學公께서 領郎將 벼슬을 하신 龜를 낳으셨으니 高湯에 옮겨 사시면서 高麗末에 벼슬을 사양하셨다. 五代孫되시는 大司憲 履祥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였으니 東方의 名望 있는 家門이 되었다. 崇禎 己巳에 大司憲의 아드님이신 霶께서 嶺南의 監司로 계실 때에 四世의 분묘를 돌아 보시고 拜禮하신 후에 修治하시고 碑石을 세우셨더니 그 후 여러 차례 兵亂을 겪으면서 子孫들은 먼 고강에 흩어져 살게 되였기 때문에 묘소는 그 고장 사람들이 몰래 차지한 바 되었다. 그 후 己丑年間에 後孫되시는 萬朝께서 嶺南에 監司로 가시게 되어 先塋을 찾으려고 하셨으나 단지 寶文閣 大提學公의 묘소만 安東의 屬縣인 臨河面에서 省掃하시고 密直使公 以上의 三代의 묘소는 있는 곳을 상세하게 알수가 없어 臨河面 水谷에 碑를 세워 疑信을 傳하며 壇을 모아 祭祀하셨다 英宗 丙寅년에 지시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後孫이신 重默 吉輔 山輔 세 분께서 申城浦에 가셔서 碑石 깨진 조각과 誌石의 조각을 午山의 작은 언덕에서 發見하시고 거기에 새겨진 方向대로 壙面을 현재의 묘소에서 열어 헤치고 살펴보시매 乾坐는 시조의 묘이고 그 아래 戌坐는 密直便公의 묘이며 또 그 밑에 亥坐는 順天 金氏의 묘이며 거기서 東便으로 聖造洲辰坐는 洪崖公의 묘소인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에 封塋을 改築하고 碑石을 세우며 祭田을 두어 歲一祭를 行하였다. 始祖의 묘소를 改封할 적에 밤을 지내고 아침에 살펴보니 壙中에 흙이 가득차 오르며 이슬이 구슬같이 어려 있었고 흙을 덮을 때에는 소낙비가 쏟아지고 壙의 왼쪽으로 무지개가 뻗쳐서 근방을 들렸다가 오랜 뒤에 사라졌으니 이것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상하게 여겼다. 아아! 姓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始祖가 있는데 거의 다 始祖들의 종적이 묘연하여 근원을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시조께서는 높은 벼슬을 지내셨으며 또 洪崖公이 그 아드님이 되시고 孫子와 曾孫이 모두 館閣의 大提學을 이어서 지내시어 당시에도 名望이 있는 家門이었으나 先系를 알수 없게 된 것은 미루어 생각하건대 國朝가 변친됨에 즈음하여 譜牒을 失博한 까닦이 아니겠는가? 安東 사람들이 或은 말하기를. 國學公 以上의 묘소는 어느곳. 어느 곳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명확한 증거가 없으매 後孫들은 한탄함을 마지 않을 뿐이다. 삼가 瑩域이 失博되었다가 찾은 사연을 적어 옛 墓誌와 함께 墓 왼쪽에 묻어 百世後까지 우리 始祖의 墓인 것을 알게 하는 바이다.

*(참조)高麗 成宗이 國子監을 두어 儒學을 맡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朝鮮의 成均館과 같다. 文宗이 官制를 정할 때 國子監에 提擧 . 同提擧 . 管勾 . 判事 . 祭酒種 . 司業 . 承博士 . 太學博士 . 注薄關門博士學正 . 學錄 . 學論 . 直學 . 書學博士 . 算學博士를 두었는데 睿宗時에 判事를 大司成으로 고쳐서 부르게 되었으며 忠烈王 元年에 國子監을 國學이라고 改稱하였다.

高麗史 高宗 忠憲王紀에 기재된 내용
*壬寅 二十九年 夏四月辛酉賜 洪之慶 及第
*高宗 忠憲王二十九年壬寅 文科榜
*知貢擧에 樞密院 副使 金敞
*取進士賜乙科洪之慶 等 三人 丙科 七人 同進士 十七人 明經 二人 恩賜 八人 及第 乙科 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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