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정 (華 政 : 빛 나는 정치)
정명공주(1603~1685), 지본, 73.5*146.0cm
정명공주는 선조와 인목왕후 연안 김씨(1584~1632)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공주다. 광해군 5년 계축옥사로 인목대비가 西宮에
유폐될때 함께 유폐되어 만 10년을 갇혀있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났다. 11세에 갇혔다 21세에 풀려나서 그 해에 영안위(永安尉) 洪柱元에게 下家한다. 그러니 정명공주는 명필이던 모후 인목대비로부터 만 10년 동안 글씨를 지도받으며 서도 수련에 매진했을 것이다. 부왕 선조도 당대 제일의 명필로 한석봉체의 대가였으니 정명공주는 필체를 타고 나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에 공주는 부왕과 모후의 필체를 따라 배워 한석봉체의 대가가 되었으니 이 華政 두 글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 글씨의 크기가 사방 73cm정도 의 큰 글씨다. 이런 크기의 글씨는 남자의 필력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어 남은 글씨가 거의 없는데 금지옥엽 연약한 공주의 체력으로 이를 써냈다는건것은 타고난 명필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결구(結構)나 필력, 운필(運筆)에 있어 어느 한 군데 머뭇거림 없이 당당하다. 과연 공주다운 배포와 기량이라 하겠다.
필력과 결구의 세련도로 보아 환갑 전후한 시기에 썻을 듯하니 현종 4년 계묘에 쓰지 않았나 한다. 이때 정치상황으로 보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정국을 주도하고 영안위 홍주원도 그와 뜻을 같이 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글씨를 써서
격려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워낙 큰 글씨였으므로 각각 장지 한 장에 한 글짜씩 써써 함께 표구했는데 종이 크기가 글자에 맞춰 서로 다르다.
인장은 정명공주(貞明公主)라는 붉은 글씨의 네모 인장인데 이는 공주의 공식인장이었을 겄이다. 찍을 자리가 마땅치 않으므로 빈 공간에 각각 한방씩 찍어 놓았으니 후손들이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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