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諱) : 홍방(洪霶)
파(派) : 지계공파(芝溪公派) 파시조
생(生) : 1573년
졸(卒) : 1638년
자(字) : 경망(景望)
호(號) : 지계(芝溪)
부(父) : 이상(履祥)
배(配) : 증 정부인 전주이씨 여흥민씨 남원양씨
과거 및 취재 : 선조(宣祖) 38년(1605)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4위
관직(官職) : 가선대부(嘉善大夫) 행 예조판서(行禮曹判書)를 거쳐, 대사간(大司諫)·도승지·부제학
문헌(文獻) : 화담집(花譚集) 지계예설(芝溪禮說)·제선의식(祭先儀式)·지계문집(芝溪文集)
묘(墓) : 고양 벽제 이전
公의 諱는 방(雨+滂)이시고 字는 景望이시고 號는 芝溪이신데 世系가 安東의 풍산현에서 나왔다.
遠祖는 高麗 國學 直學인 諱 之慶이신데 이분께서 諱 侃을 낳으셨으니 都僉議 舍人이시고 諱 侑를 낳으셨는데 密直使이시고. 諱 演을 낳으셨는데 寶文閣 大提學이시고. 諱 龜를 낳으셨는데 中郎將을 지내셨고. 諱 淑을 낳으셨는데 右軍司正 벼슬을 하셨으니 이분께서 公의 五代祖이시다.
高祖 諱 繼宗께서는 司圃署 別提로 左通禮를 追贈하셨고 . 曾祖이신 諱 禹甸은 左承旨를 追贈하셨으며. 祖이신 諱 脩께서는 副司直이신데 左贊成을 추증 하셨으니. 部將이신 諱 世敬의 아드님으로서 承旨公의 뒤를 이은 것이다 .
考에 諱 履祥께서는 號를 慕堂이라 하셨는데 德行과 經術로써 宣祖朝의 名臣이 되시었다. 大司憲의 벼슬을 지냈으며 領議政을 追贈하시었다.
配는 贈貞敬夫人 安東金氏이신데 高麗 侍中 方慶의 後孫이시고 宣務郎 顧言의 따님이시다.. 六男을 두셨는데 公께서는 그 맏이가 되신다...
처음에는 蔭仕로 벼슬길에 오르셨다가 乙巳에 增廣文科에 오르시어 淸華를 歷任하시어 마침내 빛을 나타내셨으니. 세상이 兩代 都憲으로서 빛남을 흠앙하였다.
그 이력이 많으시매 다 쓰지 못하고 여기에 대강을 간추려 쓰기로 한다.兵曹佐郎과 正郎과 參判이시며. 春坊(세자 시강원)司書. 文學이셨으며. 諫院의 正言. 獻納. 大司諫이셨으며. 憲府의 持平. 掌令. 大司憲이시었고. 弘文館 修撰 校理 副提學으로 항상 三子 職啣를 兼帶하셨으며. 禮曺의 參議 . 參判이며. 承政院의 同副 . 右副 . 左副를 지내시어 都承旨에 이르셨고. 兼帶한 職啣은 同知經筵 . 義禁府事 . 副摠管 . 備局 提調이셨으며. 外識으로서는 安邊府使 . 慶尙監司 開城留守 . 進香使 및 冬至使로 充任되어 明나라에 간 것이 두 번 이시다.
무인년 봄에 성서 옛집에서 67세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저서로는 지계예설(芝溪禮設),제선의식(祭先儀式),지계문집(芝溪文集)등이있다.
풍홍보감 발췌
홍우전(洪禹甸)의 증손(曾孫)으로, 할아버지는 홍수(洪脩)이고,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장자(長子)이다.
어머니는 김고언(金顧言)의 딸이다.
문음(門蔭)으로 출사했으며 1599년(선조 32) 은산현감을 제수받고 재직 중
평안감사 신율(申慄)의 서계(書啓)에서 “몸가짐이 청근하고 처사가 상명하다.”는 평을 들었다.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6년(선조 39)에 정언(正言)·공조좌랑(工曹佐郞), 1607년(선조 40)에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냈으며, 1610년(광해군 2) 동료들의 인혐에 대한 처치를 지체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체차되기도 하였다.
1623년(인조 1)에 예조참의(禮曹參議), 외직으로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역임했으며, 1635년(인조 13) 가선대부(嘉善大夫) 행 예조판서(行禮曹判書)를 거쳐, 대사간(大司諫)·도승지·부제학에 이르렀다.
1619년(광해군 11)에 동지사로, 1628년(인조 6)에는 희종황제의 죽음에 대한 진향사 겸 진하사로 두 차례 중국을 다녀왔다.
1621년(광해군 13) 정시의 시관으로 참여할 때, 박승종(朴承宗)과 이이첨(李爾瞻)의 알력 다툼으로 이이첨의 당(黨) 한 사람만이 급제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과거의 부정을 주장하며 이정구(李廷龜), 김신국(金藎國) 등과 함께 치죄를 요구 당하기도 하였다.
외직으로 개성유수를 지낼 때, 경기도와 강원도에서만 시행하던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해 방납의 폐를 없애고자 하였다.
아들 이주일(李柱一)이 부수찬(副修撰)이 되어, 부자(父子)가 동시에 홍문관의 관직을 차지하는 가문의 영광을 누렸다.
세자시강원문학, 지제교로서 《선조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화담집(花譚集)》을 간행했다. 저서로는 《지계예설(芝溪禮說)》·《제선의식(祭先儀式)》·《지계문집(芝溪文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