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곡비문(水谷碑文) [1]
1636년 병자호란으로 혼란한 틈을 타 김이태라는 자가 시조의 봉분을 뭉개고지석과 비석은 깨트려
깊이 묻어 버리고,그 자리에 자기집을 지어 살았다.
또한 3세조 사인공의 묘는 채승의라는 자가 봉분과 비석을 부수고 자기네 묘를 썼으니,
그 후 고려말 자손들이 이고장을 떠나 묘역을 지키지 못한 연유에 선조의 산소를 다시 잃어버리는
비통한심정을 13世 만퇴당 정익공(1645-1725)께서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 하시어
안동에서 실전한 선영을 찾으려고 온갖 백방의 노력을 하셨으나,확증을 찾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전의비(傳疑碑)를 무실(수곡)에 세웠다.
풍산홍씨남원공파 23 세손 종희(宗憙)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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