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당집(慕堂集) [0]
편찬 및 간행
저자의 시문은 詩集 1권, 文集 1권이 家藏되어 왔는데, 1793년 저자에게 시호가 내린 것을 계기로 후손들이 문집 간행을 논의하였다. 6세손 洪良浩(1724~1802)의 발문에, “후손들이 시집과 문집을 교감하고 여기에 世系, 年譜, 祭文, 挽詞, 言行錄, 碑誌와 저자의 증손 洪萬朝(1645~1725), 7대손 洪樂舜이 수집한 자료에서 뽑은 遺事를 합하여 3권으로 편차하여 板刻에 부쳤다.”고 하였으나, 이때 저자의 문집은 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필사본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본(811.98/홍이상/모-필)과 13대손 洪丙熹의 家藏本 등 두 종류가 있는데, 모두 書寫 경위와 연도가 분명치 않다. 연대본은 본서의 저본으로 10행 20자이며, 후손 홍병희의 가장본에 비해 제목의 주석이 상세하며, 홍양호의 발문, 言行錄, 〈癸酉司馬榜重會圖跋〉, 〈松都四壯元契會圖序〉, 行狀, 墓表陰記 등이 추가되어 있다. 후손 홍병희의 가장본은 詩集, 文集, 年譜 3권으로 된 罫印繕寫本으로, 연대본에 없는 〈副提學啓辭〉, 年譜 등이 실려 있는데, 이 본은 1974년에 韓國古典刊行會에서 권수에 遺墨, 目次 등을 첨부하여 영인 출판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필사 연도 미상의 사본으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본이다.
기사전거 : 跋(洪良浩 撰) 등에 의함
구성과 내용
본집은 원집 2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洪良浩의 跋이 있다.
上卷은 五言絶句 11제, 五言四韻 70제, 五言排律 6제, 五言古詩 5제, 七言絶句 65제, 七言四韻 33제, 七言排律 1제, 七言古詩 2제이다. 許筬, 金昌遠, 李廷龜, 李順慶, 劉希慶 등과 수창한 次韻詩, 1593년 聖節使로 北京에 갈 때 지은 紀行詩, 스승 閔純, 벗 許筬ㆍ禹伏龍, 사돈 李光岳 등을 애도한 挽詩, 지방에 부임하는 金昌遠, 姜紳, 북경에 사신 가는 李埈 등을 송별하는 送詩 등이 많다. 이 밖에 27세 때인 1575년에 허성, 우복룡 등 知人들과 함께 僧伽寺를 유람하고 酬唱한 시가 각 시체의 첫머리에 많이 실려 있는데, 이때 수창한 시를 모은 것이 〈僧伽酬唱集〉인데 전란 중에 없어졌다고 한다.
下卷은 疏箚 8편, 啓辭 10편, 跋 1편, 祭文 2편, 通文 1편, 表箋 3편, 策 2편이다. 소차는 대사헌, 대사간, 개성 유수 등을 사양하는 사직소가 대부분이며, 이 밖에 尊號를 올리기를 청하는 상소와 1609년에 求言에 응하여 지은 應旨疏가 있다. 계사는 부제학, 접반사, 대사성, 대사헌, 개성 유수로 있을 때 올린 것과 사직을 청하고 피혐한 것들이다. 이 중 〈副提學啓辭〉는 1592년 開城에 있을 때 민심의 이반을 막기 위해 仁嬪金氏의 오라비인 金公諒의 처벌을 주청한 내용이다. 〈通鑑跋〉은 1603년 安東 府使로 있을 때 감사 李時發이 간행한 「통감」에 대한 것이며, 제문은 閔純과 具鳳齡에 대한 것이다.
부록은 言行錄, 跋 1편, 序 1편, 敎書 2편, 祭文 8편, 挽章 4편, 行狀 1편, 神道碑銘 1편, 墓誌銘 1편, 墓表陰記 1편, 其他로 되어 있다. 언행록은 장남 洪霶이 기록한 것이다. 제문은 李廷龜, 李愼儀 등이 지은 것이며, 만장은 李恒福 등이 지은 것이다. 행장은 뒷부분이 缺落되어 있고, 신도비명은 李廷龜, 묘지명은 李埈이 지은 것이다. 이 밖에 丁思愼이 지은 치제문, 洪重徵이 지은 〈別廟上樑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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