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선의 산림경제 [0]
홍만선은 1643년(인조21)에 태어나서 1715년(숙종41)까지 살았으며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실학자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사중(士中), 호는 유암(流巖)이다. 그의 아버지는 정삼품의 벼슬인 예조참의를 지낸 홍주국(洪柱國)이었으며, 홍만선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1666년(현종 7)에는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30세에 음보(蔭補)로 벼슬길에 올라 내직으로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 의금부도사, 공조의 좌랑·정랑, 익위(翊衛), 사옹원·사재감·장악원·사복시 등의 정(正)을 지내고, 외직으로는 연원찰방, 함흥·대구 등지의 판관, 대흥·합천·고양·배천·단양 등지의 군수, 인천·부평의 부사, 상주목사 등을 거쳐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이르렀다.
인망이 높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벼슬생활에서는 정리가 미밀(微密)하여 당대의 순량리(循良吏)로 꼽혔다. 당론(黨論)의 대립이 심하였던 당시 판단을 공정히 하여 많은 인사들이 그를 찾아 의견을 들었으며, 행실이 근엄하고 당쟁에도 가담치 않아서 완명(完名)이 선비라는 평을 받았다.
연로할 때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 4권은 대표적인 향촌경제서로서 사대부의 산림생활의 지침서가 될 뿐만 아니라 농업기술에 관한 한 18세기 이후 새로운 농서(農書) 발간에 기여가 컸다.
또한 유형원(柳馨遠)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주자학(朱子學)에 반기를 들고 실용후생(實用厚生)의 학풍을 일으켜 실학(實學) 발전의 선구적 인물이 되었다. 농예(農藝) ·의약(醫藥) ·구황(救荒)에 관한 저서 《산림경제(山林經濟)》는 후일 실학사상 중요한 공적을 남겼고, 유중림(柳重臨) ·서유구(徐有) 등 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2. 문헌의 성립
이 책은 지은이의 만년인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준비, 편찬되었다. 홍만선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관운이 비교적 순탄하여 내직과 함께 외직으로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했다. 모순된 사회제도와 부패한 정치에 환멸을 느낀 허균에 크게 영향을 받은 유암은 세속적 욕망을 털어내고 은둔을 꿈꾼 허균이 농사짓고 꽃 가꾸고 여가를 이용하는 방법을 적은 에 큰 감명을 받았다. 목사 등의 지방 관리를 두루 거치는 동안 그는 민초들의 생활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생활 속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는 책을 저술해 널리 보급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우리의 기후나 생활 방식, 자신의 생생한 농촌경험을 바탕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농서·의학서등 80여종의 고전을 참조 해 책을 집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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