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傳’에서는 조선시대 궁중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한중록’의 저자이자 뒤주에 갇혀 죽어간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 정조 즉위 후 맞이하게 된 혜경궁 홍씨의 행복
어머니 혜경궁에 대한 효심이 남다른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그녀의 인생에도 다시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서기 1795년. 정조와 혜경궁, 그리고 그녀의 두 딸이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원행을 떠난다.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혜경궁의 온 식구가 함께한 이 행차는 혜경궁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침내 고통의 세월이 지나고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이것은 혜경궁이 살아온 한스러운 생애의 보상이었다.
- 계속된 혜경궁 홍씨의 위기
그러나,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조 즉위 후 풍산 홍씨 일가는 외척세력으로 탄핵을 당한다. 혜경궁의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죄였다. 임금이 된 아들에게 정치적 걸림돌이 된 친정.
혜경궁의 가슴은 타들어갔지만 아들 앞에서 어떠한 내색도 할 수 없었다.
환갑잔치 후 정조는 갑자년(1804년)에 혜경궁 친정 식구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의 꿈은 아들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산산조각났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손자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왕후는 풍산 홍씨 일가에 정치적 보복을 가하기 시작한다. 혜경궁은 더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다.
절망의 끝에서 그녀가 기댈 곳은 붓끝 뿐이었다.
- 한 자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록하니..
한중록의 또 다른 이름은 읍혈록. ‘피눈물의 기록’이란 뜻이다.
자신의 말대로 한 자마다 눈물을 흘리며 쓴 이 기록은 그녀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80년 후 한중록을 읽은 고종은 그녀의 마지막 한을 풀어주었고 1899년 혜경궁은 마침내 황후로 추존된다.
한국사전 47회 – 피눈물의 기록 한중록, 혜경궁 홍씨 2부 (2008.6.28.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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